연예계의 변함없는 이슈가 되고 있는 여배우들의 파격 변신.
지난해 예쁘기보다 망가진 변신을 택한 ‘털털한 미녀’ 연기자들이 흥행에 가장 큰 몫을 했다면, 올해는 한층 더 과감하고 섹시함으로 무장한 여주인공들이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실제 올해 초 개봉을 앞둔 여러 영화들이 극중 확 달라진 여주인공의 모습을 깜짝 공개하는 방식으로 열띤 홍보전을 펼쳐왔고, 이에 대중들은 예상과 다르지 않게 호기심 넘치는 반응을 보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달라진 여주인공의 모습을 미리 엿볼 수 있는 티저 포스터나 예고 동영상이 연신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휘황찬란한 여배우의 변신이 작품에서도 그만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확신하기 힘들다. 배우의 달라진 모습이 사람들의 관심을 대폭 끌어 작품에까지 큰 기대를 미치게 하는 홍보 차원의 효과는 훌륭하지만, ‘여배우의 변신이 작품을 두 배 빛나게 했다’는 평가는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작품 속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 여배우들의 올해 첫 성적표는 다행히 나쁘지 않다. ‘멜로퀸’의 자리를 지켜온 손예진이 팜므파탈 여성으로 변신해 호기심을 크게 불러일으킨 영화 <무방비도시>는 지난 10일 개봉해 열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 개봉 3주차에 접어든 현재까지 박스오피스 2위를 지키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예쁘장한 외모로 주목받아온 배우 김민희가 깊은 연기 내공을 필요로 하는 생활밀착형 여주인공을 연기해 관심이 집중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도 지난 17일 개봉해 현재까지 27만 이상 관객을 끌어 모으며 박스오피스 4위에 올라섰다.
섹시하고 화려한 겉모습은 아니지만 김민희의 변신이 유독 대단해 보이는 이유는 외적 뿐 아닌 내적으로도 완벽한 변신을 선보였기 때문. 이번 작품으로 인해 김민희는 배우로서 전과는 다른 뛰어난 평가를 받게 됐고, 대중과의 신뢰도 또한 높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작품 속 여배우들의 변신이 연이어 관객들의 마음을 만족 시켜줄 지는 미지수. 최근 언론시사회를 통해 첫 모습이 공개된 작품 속 여배우들의 변신은 예고만큼 파격적이거나 인상적이지 못하다.
31일 개봉을 앞둔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연기파 배우 황정민이 주연을 맡은 것 외에도 CF계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톱스타 전지현이 오랜만에 연기 활동에 나서 관객들의 기대가 상당한 상태.
하지만 언론 시사회를 통해 쏟아진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의 반응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연신 담배를 피우고 말과 행동이 거침없는 캐릭터를 통해 그저 예쁘기 만한 이미지를 벗으려는 그녀의 노력은 매우 가상해 보였으나, 완벽한 다른 여성의 모습으로 거듭났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연기’가 눈에 거슬린다.
같은 날 개봉하는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여주인공 이보영도 영화 속에서 변신으로 더할 수 있는 작품의 재미를 충분히 증가시켜주지 못했다. 언론시사회를 통해 관객들의 반응을 미리 엿본다면 ‘만족’보다 ‘실망’에 가까울 수 있다. 당시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보영의 변신은 그다지 시선을 끌지 못했다.
극중 낮에는 섹시한 재즈가수로 밤에는 '싸움의 기술'이 상당한 도적꾼으로 갖가지 매력을 발산할 만한 캐릭터지만 어느 한 쪽으로도 강한 느낌을 심어 주지 못했다. 오히려 주변 인물들보다 약한 존재감을 내비칠 정도.
언론시사회 당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이보영은 “많은 재능을 가진 인물임에도 후반부 큰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 아쉽다. 작품 전개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재즈 가수로서 좀 더 섹시하고 뚜렷한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쉽다”며 변신에 대한 아쉬움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평소 섹시한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킬 김사랑의 한층 도발적인 연기가 기대를 모은 <라듸오데이즈> 역시 편집상 문제 등으로 캐릭터 설정의 변화가 이뤄져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는 상당히 약해 보였다. 연기 경력이 상당한 '멜로퀸' 김하늘이 현실 속 여성에 좀 더 가깝게 접근한 좀 더 강하고 솔직한 변신이 예고된 <6년째 열애 중> 역시 기자시사회에서 예상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한 영화 중 하나다.
극중 여배우의 변신이 늘 이슈가 되고도 작품과 무관했던 상황은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내적인 변화는 미뤄두고 외적 변신에만 집중적인 애를 쓴 여배우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보다 이제껏 많은 영화들이 여배우의 없는 변신까지 만들어내 대중에게 소개하기 바빴던 탓은 더욱 무시할 수 없다.
수많은 경쟁작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유독 튀는 마케팅 방식이 필요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만한 소재가 있다면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제작사의 당연한 입장.
하지만 진정 좋은 작품이 입소문만으로도 '대박'을 치곤하는 상황은 지금껏 충분히 있어왔고, 작품성 있는 단편 영화가 흥행 대박을 이루는 세상이 됐다. 작품의 발전과 함께 대중의 시선도 발전을 거듭해 왔다는 얘기다.
내공 있는 변신을 하는 배우의 책임감 있는 연기와 작품의 소중한 가치를 먼저 내세울 줄 아는 제작사의 진실성 있는 태도만이 관객들의 신뢰를 두텁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